위의 제목은 상투적인 '시작'의 표현이다. 그러나 내게는 말 그대로의 말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구두를 신기 어려울 정도로 안 좋아진 건강과 직결되는 말이기 때문에.
오랜만에 내 블로그를 둘러보았다. 스물 일곱의 기록들이 참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없이 한 해가 지나갔다. 조직의 일원으로 일한 경험은 처음 해 보는 것이었지만 크게 보면 '학교'의 범주에 속하기에 큰 이질감은 없었다. 출근 첫 날부터 '선생님은 참 능숙해 보여요'라는 소리를 들은 것도 그 이유가 클 것이다. 다만 '학생'이 아니라 '선생'으로 있었다는 점 정도가 조금 달라졌을까. 돌아봤을 때, 후회가 없다는 말을 감히 뱉을 수 있을만큼 최선을 다했다. 건강의 문제로 삐긋했던 부분이 두고두고 아쉽지만 그 몸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최선을 알아주는 학생들에게 그만큼의 감정적 보상을 받았다. 앞으로도 내 인생에서 '여신', '미녀', '사랑해요'라는 말을 이만큼 자주 들을 일이 없을 것이다. ㅎㅎ 물론 힘든 일들도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교사 생활을 통해서 교직에 대한 생각을 많은 부분 정리할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다. 학교 생활은 더 없이 좋았지만 스물 여덟, 나는 '아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나는 배워야 될 것이 많고, 준비해야 될 것들이 있다. 그건 '직업'과 병행할 수 없을 만큼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들 말이다.
하여, 박사 과정 진학을 결심했다. 박사과정은 직업으로 생각하고 진학하는 것이지만 이를 직업인으로는 볼 수 없다. 따라서 석사 때와 달리 내가 지불해야 할 기회비용을 아주 구체적인 생활과 돈으로 환산해 보았다. 아...그래도 도저히 포기가 안 되더라. 그래서 올해부터는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바로는 힘들겠지만.
학업 관련된 것 빼고 생활면에서 2011년은 그간 소홀했던 인간관계가 대폭 활성화된 때였다. 일단 고교동창 NR 친구들 11명이 오랜만에 단결할 수 있는 행사였던 '료의 결혼'을 계기로 해서 정말 활발하게 만나고 이야기하고 놀고 먹었다. 인생의 활력소다. 그리고 대학원에서 만났으되 내 인생의 친구가 된 선배, 후배, 친구들과 좀 더 맘 편하게 만나며 더
깊어질 수 있었다.
기숙사 생활에서 벗어나 여러 면에서 편리한 동네로 이사한 덕에 그간 결여되어 있던 '사회 감각'을 키울 수 있던 것도 소득 중 하나다. 더하여 똑똑한 경경이와 나누었던 대화들도 버릴 수 없다.
뉴욕에도 다녀왔고 주변 사람들이 꽤 많이 결혼했고, 임신했고, 아이를 낳아서 세계가 더 확장되기도 했다.
아! 꽃꽂이도 배웠었다. ㅎㅎ (->이런 거 함)
스물 일곱의 내 자신에게 스스로가 품었던 로망은 꽤 구체적이었다. 외적인 면과 내적인 면, 능력적인 것과 품성의 면을 고루 포괄해서 상정해 놨던 그 '여성'은 후하게 점수를 줘서 절반 정도의 성공을 거뒀다. (절반은 실패했다...보다는 좋은 표현이라고 믿고 싶다.) 여기서의 절반이라는 것은 x축이 아니라 y축을 뜻한다. 로망의 '종류'를 x로 두고 그것들의 성취도를 y로 두었을 때, x는 여러개 걸쳐서 항목에는 올려놨는데 세워 둔 기준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런 의미로서의 '절반'이다.
목표 중 하나였던 '타인으로부터 '단정하다'라는 평가 받기'를 충족했던 게 제일 기뻤다. 일적으로 그런 평가를 받는 사람이고자 했던 게 조금은 달성되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랄까, 그런 감정이 들었다. 생활과, 감정과, 인간관계를 포함해서 그리고 더 나아가 죽을 때 내 인생에 대해 '단정하다'라는 말을 듣고프다. 그건 좀 더 노력해야 될 훗날의 이야기.
그리고 올해는 단 하나, '건강'에 집중하기로 했다. 우습게도 단 한번도 x축에 들어가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항목이다. 다른 것들에 밀리고 치여서 소홀히 했더니 제대로 고장이 났다. 2011년 3분기와 4분기의 카드값은 온통 병원이다. (T_T)
훗날 내가 현재 내가 겪는 육체적 고통과 그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잊고 '이 일은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며 건방을 떨까봐 이 글을 남긴다. 스물 여덟, 내가 건강을 위해 내린 결정이 다른 기회비용을 상쇄할 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절대 의심하지 말자. '예쁜 구두'를 신고 시내에 나갈 수 있을 날이 꼭 올 것이라고 믿을 거다.